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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현황

호주의 에뮤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by 부자되자! 2023. 6. 13.

에뮤 전쟁은 1932년 호주에서 발생한 에뮤 개체 수 급증으로 인해 호주군이 실시한 해수구제 작전입니다. 호주군은 대량의 에뮤를 살처분했지만, 에뮤에 엄청난 번식력과 생존력 그리고 민간의 반대로 인해 이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오늘은 '인간 vs 동물 전투'로 널리 알려진 에뮤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에뮤 전쟁의 발단

지난 번 포스팅에서 저는 호주의 토끼전쟁에 대해서 일찍이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호주의 역사는 강인한 동물들과 사투를 치르는 일이 빈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32년 호주에서 발생한 에뮤 전쟁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농부로 삶을 꾸리는 퇴역군인들과 토착조류인 에뮤와의 갈등으로 인해 발발했습니다. 서부 지역에서 농경지를 넓히면서 농부들은 작은 동물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세웠지만, 에뮤들은 거대한 몸뚱이로 울타리를 쉽게 부숴내고 농경지에 들어와 피해를 입혔습니다. 특히 1932년 9월은 가뭄이 심해져 에뮤 군단도 먹이 부족에 시달려 농경지에 지속적으로 침입하며 밀밭을 헤집었습니다. 에뮤 군단의 수는 2만 마리를 넘어섰으며, 농부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관공서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에뮤의 수는 지방 관공서가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습니다. 이에 1차 대전 참전 경력이 있는 농부들은 에뮤 퇴치를 위해 군 파병을 요청했고, 이에 호주 국방장관 조지 피어스가 대민봉사와 훈련을 겸하는 작전으로 병력 파병을 허가했습니다. 그러나 10월 31일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에뮤토벌을 잠시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음 달인 11월 2일부터 9일까지 약 일주일 동안 귀네드 퍼브스 윈-오브리 메리디스(Gwynydd Purves Wynne-Aubrey Meredith) 소령의 지휘 하에에뮤와 인간 사이에서 대전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럼 일주일간 진행된 에뮤 전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정확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개 과정

작전은 1932년 11월 2일부터 9일까지 약 일주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호주 군은 루이스 경기관총을 장착한 트럭으로 기동사격을 시도하여 에뮤들을 격퇴하려고 했으나, 에뮤들의 빠른 속도와 튼튼한 체력으로 인해 작전은 예상보다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에뮤는 시속 60km에 이르는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었고, 기관총으로 맞추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한편, 에뮤 군단은 게릴라 작전을 펼치며 호주군을 농락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무리 중 가장 큰 에뮤가 지휘관 역할을 하여 호주군을 감시하고 경계했으며, 에뮤 한 무리가 인간에게 공격을 받으면 다른 무리가 다른 곳의 밀밭을 유린하여 농작물을 훼손하는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전투는 호주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효과가 없었습니다. 탄약을 소진한 호주군은 약 수십에서 수백 여마리의 에뮤만을 소탕할 수 있었고, 동물권 단체들도 전쟁에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에 호주 의회는 1932년 11월 8일에 전쟁의 지속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고, 다음 날인 11월 9일 작전이 중단되었습니다. 지휘관들은 에뮤를 상대로 한 투쟁이 상당히 어려운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농부들의 지원 요청을 받은 호주 국방부는 12일에 병력을 증원하여 작전을 재개했습니다. 약 500마리의 에뮤가 한 달 동안 사살되었습니다. 그러나 1932년 12월 10일, 지휘관 메리디스가 마지막으로 철수하면서 에뮤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메리디스는 "에뮤 986여 마리를 사살했고 수천 마리가 부상을 입었으며 곧 죽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내용은 엄밀히 검증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에뮤 전쟁에 대해 호주 정부는 에뮤를 소탕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지 않을 결정했으며, 이후 농부들의 지원 요청은 거절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호주에서는 에뮤의 침입과 작물 훼손에 대한 이해와 대응 방안을 강화하는 데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또한 에뮤 전쟁은 사소한 전쟁 사례로서 유명해졌으며, 영연방 문화의 일부로서 블랙 유머와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후 현황

에뮤 전쟁 이후 현재 야생 에뮤는 호주에서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인간과 어느 정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호주 정부는 에뮤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야생 에뮤의 개체수는 상대적으로 안정화되었습니다. 이는 에뮤의 생태계 기여와 생물 다양성 보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결과입니다. 에뮤 전쟁 이전인 19세기 중반까지는 에뮤의 아종이 유럽인들의 정착과 함께 멸종되었으며, 이는 인류와 에뮤 간의 충돌과 사냥의 결과였습니다. 또한, 본토의 에뮤 역시 1934년에 호주 정부가 농부들에게 직접 에뮤 소탕에 필요한 탄환을 지급하여 공식적으로 57,000마리 이상을 소탕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에뮤로 인한 작물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조치였습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가 현상금 제도를 도입하여 1935년부터 1960년까지 약 284,000마리의 에뮤가 사냥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에뮤와 인간 간의 관계에서 변화와 대립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면입니다. 하지만 현재 에뮤는 보호받고 있으며 사람과 상대적으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호주 정부는 에뮤를 자연 생태계의 일부로서 보존하기 위해 법적 보호와 서식지 보전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에뮤는 자연 환경의 균형과 생물 다양성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야생 에뮤는 가축화되어 양식용 스테이크 등의 식재료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에뮤 고기는 영양가가 높고 맛이 특이하여 일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뮤의 독특한 외형과 특성은 호주의 관광 자원으로 인식되어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야생 에뮤를 관광하기 위해 호주의 다양한 지역을 방문하며 에뮤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특히 호주의 국립공원이나 자연 보호 지역에서 야생 에뮤와의 교감을 경험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떨림과 감동을 안겨줍니다. 에뮤는 크고 민첩한 몸체, 긴 다리와 목, 그리고 특이한 부리 등 독특한 외모로 호주의 자연 특성을 대표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호주에서는 에뮤가 자연 보호와 관광 산업을 통해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에뮤는 과거의 전쟁과 충돌로부터 벗어나 평화로운 환경에서 번성하며, 이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모범 사례 중 하나로 언급될 수 있습니다. 호주인들은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에뮤를 소중히 보호하고 지속 가능한 관리 방안을 모색하여 미래 세대에 안정적인 자연 생태계를 전해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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